아이가 어릴 때 엄마는 마냥 예쁘기만 하다. 하루하루 커가는 것이 신기하고 조금이라도 눈에 띄는 변화가 생기면 마치 우리 아이만 무엇을 해내는 것처럼 생각된다. 우리 아이가 유치원을 다닐 때의 내가 딱 그랬다. 내 눈엔 아이의 단점은 보이질 않았고, 오히려 우리 아이가 다른 집 아이보다 더 나은 점, 특출한 것이 무엇인가 찾느라 바빴다. 하다못해 어떤 장난감으로 놀이를 오래 해도 집중력이 좋은 거라 여겨졌고, 노래의 가사를 다 외우면 암기력이 좋은 것으로 생각했고, 밖에 나가 신나게 뛰어놀 땐 운동신경까지 좋은 거라고 대견해 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나의 이 장점을 찾고자 하는 집념은 한 번 잘 키워 보리라 다짐하는 각오와 함께 점점 더 커져갔다. 아마 그때부터였으리라. 엄마들이 삼삼오오 모여, 아이들 자랑이나 지금 하고 있는, 앞으로 잘 되기 위한 예비 공부의 과정들을 얼마나 훌륭히 수행해 내고 있는지 토해내던 많은 이야기들을 들었던 것이…….
아시겠지만 한국 엄마들의 자식 사랑과 교육열, 그리고 추진력은 전 세계 다른 어떤 나라 엄마(mom)들보다 앞서 있다. 소심했던 나도 그 엄마들 사이에 끼어 틈날 때마다 우리 아이 자랑을 한두 마디씩 꺼내어 아이의 존재감을 확인시키려 노력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웃음이 난다.
그때 우리 아이는 너무나 평범했으며, 오히려 오후에 영어학원에서 장난치는 것만 좋아했고, 다른 아이들의 집중을 방해하고, 몇 달간 배워도 영어로 읽을 줄 몰랐으며, 많은 시간을 '팽이'나 '유희왕 카드'를 가지고 놀기만 했었다. 워킹맘(working mom)이었던 나는 저녁시간에 아이를 돌봐줄 수 없었는데, 아이가 동화책은 싫어하고 TV나 카드만 가지고 논다는 친정엄마의 한숨 섞인 이야기를 자주 들었었다. 그런데도 우리 아이는 다른 집 아이들과 다를 것이고, 공부도 잘할 것이고, 앞으로 훌륭하게 될 거라는 막연한 확신을 가졌었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 어쨌든 여러 가지 과정을 거쳐 우리 아이는 미국 최고의 명문 스탠퍼드(Stanford) 대학교를 다니고 있다. 세상 엄마들의 잣대로 보면 난 절반의 성공을 거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평범한 아이를 어떻게 그렇게 키울 수 있었냐고 질문하는 많은 엄마들에게 단순히 공부와 대학만이 아닌 조금 더 덧붙이는 이야기까지 한다 해도 엄마들은 나의 경험을 지지하고 이해해 줄 듯도 싶어 몇 가지를 이야기하려 한다.
나는 소심하고 약한 엄마였다. 나의 약함과 끈기에서 엄마들이 도전받기를 바란다. 출산의 신비와 고통을 거쳐 한 생명이 세상에 나왔으니 그가 이 세상에서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간절하다. 그러나 아이가 세상에서 만날 장벽들을 부모가 대신 넘어줄 수 있는가? 우리는 아이가 이 세상의 풍파를 잘 헤쳐 나갈 수 있도록 키워야 한다. 집안에 있는 화초는 몇 사람만 보고 기뻐하지 밖에 나가면 곧 쓰러진다. 그러나 초원의 들풀은 모진 비바람을 견뎌내며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준다. 엄마들이여! 약해지지 말자. 객관적으로 판단하며 아이가 늘 치우치지 않게 하고, 뜨거운 사랑으로 안아주어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 되도록 하여, 학생의 본분인 학업에 열중하여 미래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엄마의 역할을 잘 해보도록 하자.